신라시대에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던 승려 중에 원효대사가 있습니다. 원효는 그의 법명이고 본명은 설사였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의 가장 유명한 일화는 단연 해골물 이야기입니다. 배움에 목말랐던 원효와 의상은 선진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었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두 사람은 작은 움막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극심한 갈증으로 인해 일어난 원효대사는 주위를 살피다가 물이 담긴 바가지를 발견했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가지에 담겨 있는 물을 마신 후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때 마신 물이 정말 달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침이 밝자 원효대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전날 밤에 하루를 묵은 곳이 움막이 아니라 오래된 무덤이었고, 그가 마신 물은 바가지가 아닌 해골에 고여있던 썩은 물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원효대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흔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며 결심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우리의 마음보다 더 우선되고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일체유심조가 아니라 일체유신조(一切唯神造)를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작하고 이루시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취하고 누립니다. 그래서 일체유신조(一切唯信造)이기도 합니다. 한 주간도 모든 것을 시작하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우리의 마음보다 더 우선되고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일체유심조가 아니라 일체유신조(一切唯神造)를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작하고 이루시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취하고 누립니다. 그래서 일체유신조(一切唯信造)이기도 합니다. 한 주간도 모든 것을 시작하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