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역사에 아주 중요한 인물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마포삼열 선교사님과 이기풍 목사님입니다. 마포삼열(사무엘 마펫)은 목사 안수를 받은 그다음 해, 26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부터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태평양을 건너 1890년 1월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세 차례의 평양 전도 여행을 마친 후 마펫은 평양을 자신의 선교 중심지로 확정하였고, 평양에 가옥을 구매하고 선교지부를 설치한 후 바로 평양에 첫 번째 교회인 널다리골교회를 세웠습니다. 성도의 수가 늘어나자 1899년에는 장대현교회를 세우고 1대 담임목사로 섬겼는데 바로 이곳 장대현교회에서 1907년의 평양대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들이 성장하고 목회자 양성이 시급해지자 마펫은 2만여 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평양신학교를 설립, 1901년에 장대현교회의 장로 방기창과 김종섭 두 사람으로 시작하여 1907년에 최초로 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 7명 중 한 명이 바로 이기풍 목사님이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1908년도에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제주도에 파송되어 교회를 세우고 7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하다가 건강의 문제로 육지로 돌아왔고, 70세 노년의 나이에 마지막 목회지였던 여수 우학리교회에 부임하여 신사참배 반대를 하다가 4년 옥살이를 하다가 고문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 최초의 선교사,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풍 목사님은 원래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여인지 기독교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졌었기 때문에 마포삼열 선교사님에게 돌을 던지며 박해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로 선교사님은 아래턱에 큰 부상을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던 이기풍 목사님은 3년 후 소안련 선교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고초를 당한 마포삼열 선교사님을 만나 사죄하였습니다. 마치 전에는 비방자요 폭행자였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복음을 위해 순교한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난 박해자 이기풍도 180도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 목사와 선교사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한 주간도 복음과 진리의 말씀, 그리고 우리의 성화를 이루시는 성령 안에서 거룩한 변화의 열매를 맺으시길 축복합니다.
교회들이 성장하고 목회자 양성이 시급해지자 마펫은 2만여 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평양신학교를 설립, 1901년에 장대현교회의 장로 방기창과 김종섭 두 사람으로 시작하여 1907년에 최초로 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 7명 중 한 명이 바로 이기풍 목사님이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1908년도에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제주도에 파송되어 교회를 세우고 7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하다가 건강의 문제로 육지로 돌아왔고, 70세 노년의 나이에 마지막 목회지였던 여수 우학리교회에 부임하여 신사참배 반대를 하다가 4년 옥살이를 하다가 고문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 최초의 선교사,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풍 목사님은 원래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여인지 기독교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졌었기 때문에 마포삼열 선교사님에게 돌을 던지며 박해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로 선교사님은 아래턱에 큰 부상을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던 이기풍 목사님은 3년 후 소안련 선교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고초를 당한 마포삼열 선교사님을 만나 사죄하였습니다. 마치 전에는 비방자요 폭행자였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복음을 위해 순교한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난 박해자 이기풍도 180도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 목사와 선교사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한 주간도 복음과 진리의 말씀, 그리고 우리의 성화를 이루시는 성령 안에서 거룩한 변화의 열매를 맺으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