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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신일 목사
게시일 2026-09-13
19세기 말, 하와이의 외딴 섬 몰로카이는 한센병 환자들이 버림받아 죽어가던 절망의 유배지였습니다. 세상 모두가 전염을 두려워하며 그들을 격리하고 벽을 쌓았을 때, 벨기에 출신의 다미안 신부는 스스로 그 죽음의 섬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고름을 닦아주고 상처를 싸매며 그들과 함께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늘 "교우 여러분"으로 시작하던 그의 강론 첫마디가 바뀌었습니다. "우리 나병환자 여러분(We lepers)."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음을 알리는 순간이자, 마침내 그들의 처지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눈물의 고백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안전한 울타리 너머에서 동정 어린 시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절망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이밀며 고난의 연대를 맺는 데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 삶이었습니다.

2천 년 전,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방식 역시 이와 같았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죄인’이라 낙인찍고 거룩함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전의 거룩한 제단에만 머물지 않으시고, 손가락질받던 세리 레위의 일터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를 제자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비난받는 세리와 죄인들이 모인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 체면과 명예를 잃을지언정 기꺼이 '죄인들의 친구'라는 꼬리표를 달기를 주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가장 거룩하신 의인이 가장 비참한 죄인의 영역 안으로 완전히 걸어 들어오신 이 파격적인 식탁 교제야말로, 우리를 살리신 복음의 심장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교만한 죄인과,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주님을 찾는 겸손한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도도한 바리새인의 집이 아니라 상처투성이 죄인들이 모인 마태의 집에서 비로소 참된 위로를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구원을 얻은 것은 주님이 우리를 멀리서 구경하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 곁으로 내려와 함께 아파하시며 대신 십자가를 져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와 다른 이들을 쉽게 판단하며 분리의 벽을 쌓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미안 신부처럼, 그리고 우리 예수님처럼, 이번 한 주간 우리가 만나는 연약한 이웃들의 아픔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참된 사랑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