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오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하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권면합니다. 종말의 신앙이란 단순히 종말을 두려워하며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언젠가 서게 될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바라보며 바로 ‘오늘’을 가장 지혜롭게 선택하는 삶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미워하고 오해했던 이들과 서둘러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며 막힌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잠자는 신앙을 깨우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기도’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노래했던 다윗처럼, 이슬이 맺힌 고요한 아침에만 만나를 거둘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기도로 영혼의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을 뵈옵고자 하는 열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로 깨어난 영혼이 일상에서 걸어가야 할 다음 걸음은 바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서 ‘뜨겁게’라는 말은 일시적인 감정의 뜨거움이 아니라, 식지 않고 끝까지 지속되는 신실한 사랑을 뜻합니다.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의 발까지 끝까지 사랑으로 씻기셨던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사랑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나 중심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심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며 상대방의 허다한 허물과 죄를 덮어주는 성숙한 사랑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뜨거운 사랑의 온기는 교회 안의 지체들을 넘어 길 위의 낯선 이들에게로 넓어져야 합니다. 참된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표지 중 하나는 낯선 자를 기꺼이 환대하고 대접하는 영성입니다. 성도의 교제와 섬김은 결코 우리만의 성벽 안에 갇혀서는 안 되며, 개교회주의의 높은 담장을 넘어 소외된 이웃과 나그네에게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비록 나그네를 대접하고 섬기는 일에 수고와 물질의 희생이 따를지라도, 서로 원망이나 불평 없이 기쁨으로 감당할 때 그곳에 비로소 하나님의 샬롬이 임합니다. 기도로 깨어나고, 사랑으로 덮으며, 환대로 이웃을 품는 삶이야말로 마지막 때를 가장 눈부시게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풍경입니다.
그렇게 기도로 깨어난 영혼이 일상에서 걸어가야 할 다음 걸음은 바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서 ‘뜨겁게’라는 말은 일시적인 감정의 뜨거움이 아니라, 식지 않고 끝까지 지속되는 신실한 사랑을 뜻합니다.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의 발까지 끝까지 사랑으로 씻기셨던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사랑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나 중심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심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며 상대방의 허다한 허물과 죄를 덮어주는 성숙한 사랑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뜨거운 사랑의 온기는 교회 안의 지체들을 넘어 길 위의 낯선 이들에게로 넓어져야 합니다. 참된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표지 중 하나는 낯선 자를 기꺼이 환대하고 대접하는 영성입니다. 성도의 교제와 섬김은 결코 우리만의 성벽 안에 갇혀서는 안 되며, 개교회주의의 높은 담장을 넘어 소외된 이웃과 나그네에게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비록 나그네를 대접하고 섬기는 일에 수고와 물질의 희생이 따를지라도, 서로 원망이나 불평 없이 기쁨으로 감당할 때 그곳에 비로소 하나님의 샬롬이 임합니다. 기도로 깨어나고, 사랑으로 덮으며, 환대로 이웃을 품는 삶이야말로 마지막 때를 가장 눈부시게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