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메섹 도상에서 홀연히 임한 빛 앞에 거꾸러졌던 바울이 들은 주의 음성은 그의 평생 신학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당시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두려 했을 뿐인데, 주님은 그것을 곧 ‘나를 박해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렬한 만남을 통해 바울은 교회가 단순히 신앙을 공유하는 모임이 아니라,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몸’이라는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주님과 연합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뗄 수 없는 생명의 지체로 엮이게 됩니다. 지체를 사랑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며, 지체를 아끼는 것이 머리 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지체가 존재하며, 이 다양성은 교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몸에 손과 발, 눈과 귀가 모두 필요하듯이, 교회 안의 모든 지체는 저마다 고유하고 고귀한 역할이 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감독이 선수의 재능을 보고 공격수와 수비수를 배치하듯, 우리를 지체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라는 말씀처럼, 손이 발이 될 수 없고 발이 손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를 지금의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선한 뜻에 감사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킬 때, 교회는 비로소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이처럼 하나 된 몸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은 바로 ‘공감과 돌봄’에 있습니다. 우리 몸은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 몸이 그 고통을 인지하고, 손이 움직여 가시를 빼내며 눈이 그 자리를 살핍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이와 같아서, 내 옆의 형제와 자매의 아픔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나의 아픔으로 함께 느끼는 곳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은 우리가 한 생명을 나누어 가진 한 몸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연약한 지체의 형편을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먼저 살피고, 아파하는 이의 곁에 가만히 서서 눈물을 닦아줄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따뜻한 몸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지체가 존재하며, 이 다양성은 교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몸에 손과 발, 눈과 귀가 모두 필요하듯이, 교회 안의 모든 지체는 저마다 고유하고 고귀한 역할이 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감독이 선수의 재능을 보고 공격수와 수비수를 배치하듯, 우리를 지체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라는 말씀처럼, 손이 발이 될 수 없고 발이 손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를 지금의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선한 뜻에 감사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킬 때, 교회는 비로소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이처럼 하나 된 몸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은 바로 ‘공감과 돌봄’에 있습니다. 우리 몸은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 몸이 그 고통을 인지하고, 손이 움직여 가시를 빼내며 눈이 그 자리를 살핍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이와 같아서, 내 옆의 형제와 자매의 아픔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나의 아픔으로 함께 느끼는 곳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은 우리가 한 생명을 나누어 가진 한 몸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연약한 지체의 형편을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먼저 살피고, 아파하는 이의 곁에 가만히 서서 눈물을 닦아줄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따뜻한 몸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