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5 14:10

구속자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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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신일 목사
게시일 2026-04-26
인생의 폭풍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난의 이유를 찾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고난은 냉철한 인과응보의 논리나 인간의 지식으로 다 풀리지 않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욥의 곁을 지켰던 친구들은 나름의 확신으로 고난을 분석하며 "네 죄 때문이다"라고 정죄했지만, 그들의 차가운 설명은 욥을 살리는 생명의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더 깊은 절망과 고립으로 몰아넣는 칼날이 되었습니다.

욥이 그 처절한 침묵의 자리에서 깨달은 것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줄 '설명자'가 아니라 자신의 무너진 삶을 대신 책임져 줄 '존재'였습니다. 이때 욥의 입에서 터져 나온 고백이 바로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개역개정,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욥 19:25)라는 위대한 선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속자, 즉 '고엘'은 단순히 말로만 돕는 변호자가 아니라, 친족으로서 억울함을 풀어주고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 주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삶을 재건해 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욥의 이 고백은 상황이 호전되었거나 고통이 멈췄기 때문에 나온 승전보가 아니었습니다. 뼈를 깎는 아픔과 하나님의 침묵이 여전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라고 믿음의 닻을 내렸습니다. 참된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캄캄한 자리에서도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구속자의 손을 끝까지 붙드는 전적인 신뢰입니다.

우리가 고대하고 붙들어야 할 진정한 고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멀리서 구경하며 훈수 두는 분이 아니라, 친히 우리와 같은 비참함 속에 들어오셔서 십자가라는 처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 인생의 모든 빚을 대신 갚아주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은, 말뿐인 위로를 넘어 우리의 무너진 삶 전체를 짊어지고 책임지시는 영원한 친족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올 때 '이해'를 붙들려 하지 마십시오. 정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기보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라고 고백하며 우리 편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그분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에, 욥이 고백한 그 영광의 재건이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