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명절에 예수를 믿지 않던 외갓집을 방문하면 늘 제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제사 동안 다른 방에 머물렀고, 끝난 뒤 친척들이 권하는 음식을 정중히 거절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외숙모님은 제사 전 미리 떼어놓은 음식을 상에 차려주시며 우리를 배려해 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목회자이셨던 부모님이 음식을 거절하신 것은 그 음식이 부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혹여 신앙적 혼란에 빠질까 봐, ‘연약한 자’인 우리를 위해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신 사랑의 선택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지식파와, 그것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충돌했습니다. 바울은 지식파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날카로운 경고를 덧붙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아무리 올바른 지식이라도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 지식은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를 더 귀하게 여겨, 필요하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논리적이고 예리한 ‘옳은 말’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형제를 향한 사랑이 빠진 지식은 남을 정죄하는 칼이 될 뿐, 결코 덕을 세울 수 없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나의 행동이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지식과 자유가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그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지식보다 사랑이 더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비판의 목소리보다 격려의 손길이, 정죄보다 품어주는 사랑이 앞서기를 바랍니다. 지식 위에 사랑을 더하여 덕을 세우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고린도 교회에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지식파와, 그것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충돌했습니다. 바울은 지식파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날카로운 경고를 덧붙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아무리 올바른 지식이라도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 지식은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를 더 귀하게 여겨, 필요하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논리적이고 예리한 ‘옳은 말’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형제를 향한 사랑이 빠진 지식은 남을 정죄하는 칼이 될 뿐, 결코 덕을 세울 수 없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나의 행동이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지식과 자유가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그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지식보다 사랑이 더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비판의 목소리보다 격려의 손길이, 정죄보다 품어주는 사랑이 앞서기를 바랍니다. 지식 위에 사랑을 더하여 덕을 세우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